지난주 금요일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뉴스 알림을 보다가 멍해졌다. 이란 전쟁 확전 우려에 유가 100달러 돌파. 그 순간 올해 초에 봤던 다보스 WEF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가 떠올랐다. 1월에 그 보고서 내용 다룬 유튜브 영상 보면서 '에이 설마 이게 다 터지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터져버렸다. 내 계좌도 함께 터졌고. 그래서 오늘은 그 보고서가 경고했던 나머지 리스크들을 다시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미 1위, 2위가 현실이 됐으니까 3위부터는 뭔지 제대로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다보스 보고서 적중률이 소름 돋는 이유
이 보고서가 그냥 허황된 전망이 아니라는 건 이미 역사가 증명했다. 2020년 1월 보고서에서 감염병 리스크가 갑자기 상위권으로 올라왔는데, 그 해에 코로나가 터졌다. 2022년에는 에너지 위기와 지정학적 갈등을 경고했고,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리고 올해 2026년 보고서에서 지정학적 대립과 국가 간 무력 충돌을 1, 2위로 꼽았는데 지금 어떤가. 미국-이란 전쟁이 터졌고 관세 전쟁은 더 심해지고 있다. 전 세계 1,300명 넘는 CEO와 정보기관 수장들이 머리 맞대고 만든 보고서가 이 정도로 맞아떨어지면 나머지 경고들도 무시하기 어렵다.
경기 침체와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보고서에서 경제 침체 리스크가 8계단이나 뛰어서 11위가 됐다. 인플레이션도 8계단 올라 21위, 자산 버블 붕괴는 7계단 상승해서 18위. 숫자만 보면 순위가 낮아 보이지만 상승폭이 심상치 않다. 글로벌 컨설팅사 언스트앤영에 따르면 서방과 이란이 직접 충돌할 경우 전 세계 GDP가 1년 뒤에 1.9% 증발한다고 한다. 일본은 -2.6%, 유로존 -2.3%, 중국 -1.9%. 우리나라도 문제인 게, 한국은행이 올해 2월에 경제 전망 발표할 때 브렌트유를 배럴당 64달러로 잡았다. 근데 지금 100달러를 넘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증권사 리포트에 나오는 긍정적인 전망치들은 의미가 없어진 거 아닌가 싶다.
회사 동료가 며칠 전에 '어차피 전쟁 끝나면 주식 오르니까 지금 사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물어봤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역사적으로 전쟁 리스크가 단기 충격만 주고 빠르게 회복된 경우가 많았던 건 사실이다. 근데 이번엔 유가라는 변수가 다르다. 전쟁이 끝나도 미친 물가가 계속 남아서 실물 경제를 갉아먹을 수 있다. 경기는 침체하는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이게 진짜 무서운 시나리오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공급망 위기
보고서에서 중요 공급망 붕괴 리스크가 19위에서 16위로 올랐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한 게 왜 심각하냐면, 전 세계 원유 거래량의 20%가 이 바닷길을 지나간다. 한국은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고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특히 높다. 쉽게 말해서 집 수도관 메인 밸브가 잠기는 상황이다. 여기에 미중 무역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 중국에서 싸게 만들던 물건들에 미국이 관세 60%씩 때리니까 공장들이 억지로 이동하고 있고, 그 전환 비용은 결국 물건값으로 전가된다.
그런데 위기 속에서 수혜를 보는 섹터도 있다. 조선, 방산, 전력, 인프라 쪽이다. 미국과 유럽이 에너지 안보 지키겠다고 파이프라인, LNG 터미널, 전력망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한화 김동관 부회장이 이번 다보스 포럼에 직접 가서 방산 협력과 에너지 전환 논의에 참여한 것도 이 흐름을 읽은 것 같다. 고려아연도 핵심 광물 공급망 세션에 들어갔고. 나도 작년 말에 방산 ETF를 조금 담아뒀는데 지금 유일하게 플러스인 종목이다.
AI 리스크가 10년 후 5위로 급등한 이유
AI 기술의 부정적 결과가 단기 2년 전망에서는 30위밖에 안 된다. 근데 10년 뒤 전망으로 보면 무려 5위로 수직 상승한다. 25계단이나 뛴 건데 33개 리스크 항목 중에서 가장 큰 상승폭이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가 다보스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AI가 일부 기술 기업들 배만 불린다면 결국 투기 거품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엔비디아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극소수 빅테크만 돈 잔치하고 일반 기업이나 노동자는 소외되면 결국 사회적 반발로 터진다는 거다.
데이터 센터 전력 소비 문제도 심각하다. 보고서는 2030년에서 2035년 사이가 되면 AI 데이터 센터들이 전 세계 전력의 20%를 소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멕시코나 아일랜드에서는 이미 데이터 센터 건설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근데 여기서 투자자로서 봐야 할 건 AI 리스크가 곧 AI 기회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이다.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는 2030년까지 7,800만 개의 일자리가 순증가하고, 비관적 시나리오에서는 미국 초급 사무직의 50%가 날아가고 실업률이 20%까지 치솟는다.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느냐에 따라 베팅해야 할 섹터가 완전히 달라진다.
양자 컴퓨팅이 가져올 보안 위협
대중들이 잘 모르는 리스크가 하나 있다. 양자 컴퓨팅이다. 양자 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보다 수백만 배 빠르다는 건 들어봤을 텐데, 문제는 이 속도로 암호를 깨버릴 수 있다는 거다. 인터넷 뱅킹, 카드 결제, 이메일 전부 암호로 보호받고 있는데 양자 컴퓨터 앞에서는 이 자물쇠가 다 풀린다. 더 소름 돋는 건 해커들이 지금 당장은 암호를 못 푸니까 암호화된 데이터를 일단 훔쳐서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되면 그때 해독하겠다는 전략인데, 이걸 '지금 훔치고 나중에 해독한다'라고 부른다. 전문가 53%가 10년 안에 이게 가능해질 확률이 50% 이상이라고 봤다. 근데 양자 안전 암호를 도입한 기업은 겨우 5%밖에 안 된다.
기후 리스크는 느린 폭탄이다
단기 2년 전망에서는 기후 리스크 순위가 다 떨어졌다. 극한 기상 현상이 2위에서 4위로, 오염이 6위에서 9위로. 전쟁이랑 경제 문제가 당장 급하니까 환경은 뒤로 밀린 거다. 근데 10년 전망으로 보면 1위가 극한 기상 현상, 2위가 생물 다양성 손실이다. 상위 10개 중에 5개가 환경 리스크다. 당장 안 보인다고 위험이 사라진 게 아니라 느린 폭탄처럼 쌓이고 있는 거다.
솔직히 이 보고서 내용을 정리하면서 좀 무서웠다. 1월에 봤을 때는 '에이 설마'였는데 3개월 만에 1위, 2위가 현실이 됐으니까. 물론 보고서가 100% 맞을 거라고 맹신하는 건 위험하다. 전문가들도 틀릴 때가 많고, 예상 못한 변수로 상황이 뒤바뀔 수도 있다. 다만 1,300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경고한 내용이 이 정도로 맞아떨어지고 있다면 나머지 경고들도 머릿속에 넣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도 당분간은 현금 비중을 좀 높여두고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다. 회복장이 왔을 때 온전히 먹으려면 중간에 지뢰를 피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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